새해맞이 손편지
편지를 쓰게된 이유
이번에 새해맞이 손편지를 쓰게 되었다. 손편지를 쓴다고 하면 그런 말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같다. ‘요즘이 어떤 시대인데 손편지를 쓰니?’ 이번에 직접 손편지를 써본 결과 실리만 따진다면 사실 손편지를 쓰는 것은 말도 안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하지만 어째서 아직까지 편지를 쓰는 사람이 남아 있는지 알게되었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손편지로 나의 마음을 전달하는 멋진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다짜고짜 편지를 보내는 것도 이상하다. 그래서 나는 먼저 주변 사람들에게 편지를 써보기로 결심을 했다.
편지를 쓰려고 결심을 하고나면 살짝 막막하다 왜냐하면 학교에서 주변인물에게 편지 쓰기는 많이 해봤지만, 편지를 직접 보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편지를 보내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필요했다. 먼저 글을 쓰기위한 편지지와 그것을 담을 편지 봉투, 그리고 우편 배송에 대한 금액을 지불했다는 것을 보이기 위한 우표까지… 어떤것을 고를지 하나 하나 먼저 고민하기 시작했다.
생에 처음으로 사본 편지지
가장 먼저 편지지를 고민했다.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기본규격의 편지봉투와 단순한 편지지였겠지만 이왕 하는거 이쁜 편지지에 편지를 써서 보내고 싶었다. 그래서 근처에 있는 커다란 문구점으로 갔다.
그전에 문구점을 왔을때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한켠에 적지않은 수의 편지지와 편지봉투들이 가지런히 놓여있는것을 발견했다. 이쁜 편지지가 많았지만 나는 아무래도 처음 편지를 보내보는 것 이기 때문에 편지 보내기에 필요한 것들이 이미 세트로 구성되어있는 상품을 선택했다.
내가 고른 편지지 세트는 8장의 편지지와 4개의 편지봉투, 봉인 스티커, 주소 라벨으로 구성되어있었다. 디자인도 마음에 들 뿐더러 4명에게 편지를 보낼 생각이었기 때문에 아주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이쁜 편지지를 고른것과는 반대로, 우표는 어떤것을 사야되는지 잘 감이 안잡혀서 우체국에 직접 가서 “이런 편지봉투를 써서 편지를 보내려고 하는데, 어떤 우표를 사면 될까요?” 하니까 투박한 우표 4장을 뽑아주셔서 그 우표를 쓰게 되었다. 한장당 520원짜리 투박한 우표였다. 이렇게 우표까지해서 대략 만원 좀 안되는 금액으로 편지를 써서 보낼 준비를 모두 마쳤다.
편지에 어떤 글을 쓰면 좋을까?
당연하게도 편지지에 처음부터 글을 쓸 자신은 없었다. 평소에 글을 쓸 때도 무의식적으로 손이 마구마구 나가버리는 바람에 안그래도 지우개를 쓰는 빈도가 높은데 편지지에 글씨를 쓸 수 있는 기회는 단 한번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컴퓨터의 메모장에 친구에게 하고싶은 말을 하나하나 적어낸 다음에 편지에 배껴서 썻다.
하지만 친구에게 할 말을 생각하는게 생각보다 쉽지는 않았다. 편지를 쓰기 전에는 친구에게 해주고싶은 이런말 저런말이 많이 떠올랐었는데 막상 쓰려고 마음먹으니까 글쓰기 과제를 하는듯한 느낌이 계속 나는 바람에 편지 쓰기를 끝없이 미루게 되었다. 미루고 미루다보니 새해맞이 손편지는 물건너가버렸고, 그냥 안부편지가 되어버렸다. 한동안은 편지가 써지지가 않아서 ‘내가 친구들한테 할말이 이렇게도 없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막상 또 글을 쓰기 시작하니까 마음속에서 친구에게 해주고싶은 말들이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해서 의외로 지면을 빠르게 채우기 시작했다.
편지를 쓰면서 내가 쓴 글을 검토해보니까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뭔가 마음이 담긴 편지가 아니고 가벼운 잡담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이런 말들을 전하려면 차라리 카카오톡으로 보내는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서 인터넷의 힘을 좀 빌렸다. 어떻게 하면 좀 더 괜찮은 편지를 쓸 수 있을까? 인터넷에는 수많은 조언들이 있었지만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조언은
편지는 나의 이야기보다 남의 이야기를 써라.
라는것 이었다. 이 조언을 듣고 바로 내 글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온통 내 이야기 뿐이었다. 그나마 덜한곳은 편지의 앞부분에 안부를 묻는곳 정도뿐 이었다. 이제야 편지를 객관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게 되었다. 내 이야기가 없고 남의 이야기만 가득한 편지를 누가 읽고싶어할까. 나는 쓰인 글을 전부 지우고 처음부터 다시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확실히 이번에는 다른 느낌이었다. 그리고 앞서는 느껴보지 못한 감정은 느꼈다. 내가 그 사람의 입장을 공감하고, 진실한 이야기를 하고, 내 마음을 전달하는… 편지를 쓰는것은 남에게 좋은 일이 아니고 편지를 쓰는 자체가 나에게 좋은 행동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공감이 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어떤 사과를 구하거나 내 감정을 호소할 필요가 있을 때 장문의 카톡을 쓰는것 너무 싫어하는데 편지가 장문의 가톡의 완벽한 대체제라는 느낌이 들었다. 장문의 카톡은 감정만 전달할 뿐 둘 사이에는 감정의 골이 깊어지는데, 편지는 둘의 마음에 치유를 해줄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완성된 4개의 편지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어디가서 자랑하지는 못하지만 부끄럽지는 않은 4장의 편지가 완성되었다. 이게 편지지를 책상위에 꺼내들고 한장 한장 나의 글씨로 편지지를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이때부터는 마음이 가벼웠다. 그동안은 선택하고 고민하고의 연속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정해진 일들만 순차적으로 하기만 하면 금방 마무리가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다만 편지지로 글을 옮겨적는 과정에서 내 글씨가 조금만 이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떠나지를 않았다. 너무 이쁜 편지지 위에 지렁이 글씨가 쓰여지니까 좀 무안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 8장의 편지지를 모두 체우고 하나하나 포장하기 시작했다. 편지봉투에 편지지를 잘 확인해서 두장씩 넣고, 우표를 붙이고, 미리 받아놨던 주소를 적고, 그리고 편지가 반송 될 수도 있기때문에 우리집 주소도 좌상단에 적어놓았다. 이제 마지막 단계로 스티커를 이용해서 편지를 봉인하면 끝이다.
편지를 써본 후기
보낼 준비를 끝낸 편지를 보니까 살짝 허탈함이 느껴졌다. ‘진짜로 나에게 남는것은 하나도 없구나’ 은근히 공간을 차지하던 편지지세트와 우표뭉치는 4장의 편지로 바뀌었다. 이 4장의 편지를 보고서야 편지의 의미가, 편지가 아직까지 쓰이는 이유가 느껴졌다. 오롯이 남을 위해 비용을 지불하고, 시간을 투자하고, 마음을 드러내는 이 행위가 나의 손해를 감수 하지 않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일방적인 손해를 감수하고 받는이를 위해 나의 마음을 전달하는 이 편지야 말로 어쩌면 “말” 보다도 감정을 잘 전달 할 수 있는 매개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4장의 나의 진심은 편지를 매개로 내 손을 떠났다. 이제는 편지봉투가 바뀌어서 잘못 배달 된다거나 다시 나게에 반송되지 않기를 기도할 뿐이다.